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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이런 책

2022년 노벨문학상 소설가 '아니 에르노' <남자의 자리>

by 북몽키 2022. 10. 7.

이 책의 원제는 la place다.

기억의 오류는 감정이 개입하면서 생긴다. 아니 에르노는 죽은 아버지에 대한 생전 모습을 글로 온전히 담기 위해 최대한 감정을 배제하고 흡사 기자처럼 정보를 전달하며 지적인 문장으로 그의 삶을 천천히 써내려갔다. 가족의 고난과 행복의 순간을 관조하듯 써갈수록 아버지의 모습은 점점 선명해졌다.

장례와 애도의 절차에 사람들이 고인에 대한 저마다 개인적인 단상을 표현하는 것을 보며 단면적인 관점을 거부하며 최대한 진실에 근접하고자 하는 문학적 작가이자 딸로서 아니 에르노는 아버지의 삶과 모습을 다양한 각도에서 조명하며 최대한 풍부하고 진실되게 써내고 싶었을거다. 그렇게 글은 생생히 실존하는 인물들이 설 수 있게 만드는 공간이 된다.

아버지에 대한 글을 끝내고 마지막 장에 아니 에르노가 카트를 끌고 줄을 서다 계산대에서 만난 제자 얘기를 한다. 마트 계산원이 자신의 제자였음을 알아본 것은 짧은 기억이다. 그런데 제자는 아니 에르노와의 만남에서 더 많은 기억을 떠 올렸다.

하지만 아니 에르노는 진로에 관한 얘기가 기억나지 않는다. 힘을 다해 객관적으로 붙잡아 놓지 않은 그저 머리 속에 담겨진 기억이라는 것은 불완전하고 함께 있던 과거는 개인과 개인에게 쪼개지고 부서져 그 공간이 허무하게 흩어져버린다.

식사를 하던 중에 아무것도 아닌 일로 싸움이 터지고는 했다. 그가 대화할 줄 모르기 때문에 나는 늘 내가 옳다고 믿었다. 나는 그가 음식을 먹는 태도 혹은 말하는 방식을 지적했다. 그에게 바캉스를 보내 주지 않는다고 비난했다면 나 자신이 부끄러웠을 테지만, 그의 태도를 바꿔주려고 했던 것이라 정당하다고 확신했다. 어쩌면 그는 다른 딸을 원했을지도 모른다.

 

남자의 자리

책 소개

자신의 개인적 체험을 보편적 차원으로 확장해나가는 독보적인 글쓰기와 꾸준한 작품 활동으로 전 세계 독자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아니 에르노의 『남자의 자리』 개정판이 1984Books에서 출간되었다.

아버지의 삶을 회고하며 그의 말과 제스처, 취향, 인생에 영향을 미쳤던 사건들, 자신과 함께 나눴던 한 존재의 모든 객관적인 표적을 사실을 바탕으로 '필요한 단어'만을 사용해 옮겨 적은 이 작품은, '어떤 현대 문학과도 닮지 않은 압도적인 걸작'이라는 평과 함께 1984년 르노도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소설은 중등교사 자격시험에 합격하고 정확히 두 달 후에 있었던 아버지의 죽음으로부터 시작한다. 비명도 오열도 없이 진행되었던, '고상한 세계'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덤덤하게 흘러가는 장례식과 사망 이후의 형식적이고 통상적인 절차들을 끝내고 돌아가는 기차 안에서 '이 모든 것을 설명해야만 한다'는 생각이 작가에게 찾아온다.

'시처럼 쓴 추억도 환희에 찬 조롱도' 없는 단조로운 방식으로, 현실이 스스로 제 모습을 투명하게 드러내도록 쓰인 이 소설은 쓰지 않으면 더는 존재하지 않는 어느 불투명한 삶을 구하는 한편, 그 과정에서 벌어진 나와 아버지와의 거리, 계층간의 거리 역시 드러낸다. 언제나 '두 강 사이를 건너'게 해준 '뱃사공'이자, 자신을 멸시하는 세상에 자식이 속해 있다는 사실이 커다란 자부심, 심지어 존재의 이유였던 '한 아버지, 한 남자의 자리'는 다시 한번 개인적 차원을 넘어서 우리 옆의 '자리'를 돌아보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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