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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스트 리베카 솔닛의 회고록 <세상에 없는 나의 기억들> 리베카 솔닛의 회고록을 읽어보았다. 이 책이 내가 읽어보는 저자의 첫 책이다. 현대의 페미니즘 최고의 지성이라 일컬어지는 작가의 회고록은 폭력이 가득한 일상에서 그녀가 어떤 일들을 겪었고, 그것을 견뎌내기 위해 어떤 요령을 습득했으며 어떻게 책으로 도피했고 또 어떻게 글을 쓰게 되었는가로 진행된다. 말 그대로 그 시절을 회상하는데 지나지 않아 이 책을 다 읽고서 어떨지 알 수 없었다. 누구보다도 영향력 있는 목소리를 가지고 있는 그녀에게도 한때는 목소리를 낼 수 없었던 시절이 있었고 억압과 폭력이 일상이었던 시간, 저자의 말마따나 비존재로서 살았던 시간이 있었다. 이 책은 그 시절을 회고하고 있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내내 불편했다. 책 내용이 그렇다기보다는 '페미니즘 책'이라는 것을 볼 때 늘 느끼는 .. 2022. 10. 28.
팬데믹 이후의 인류에 대한 상상 <지구 끝의 온실> 『지구 끝의 온실』은 2055년부터 2070년까지 지구 전체가 먼지로 뒤덮여 인류가 삶의 터전을 잃었던 더스트 폴 이후 새롭게 재건된 시점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식물학자인 아영은 연구를 진행하던 도중, 자신이 진행하던 연구와 관련한 제보를 받고 아디스아바바의 나오미와 아마라 자매를 만나게 된다. 그들은 더스트 시대의 생존자였고, 더스트 폴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한 해독제를 만든 영웅이었지만 재건 이후 과학자들에 의해 ‘위험한 식물로 약을 만들어 배포했던 마녀’라는 오명을 쓰고 스스로를 고립시킨 사람들이다. 이들은 아영에게 더스트 폴 시대에 자신들이 겪었던 이야기를 전해준다. 더스트가 세상을 덮치자, 산업화 시대의 인클로저 운동을 연상시키듯 특권을 가진 사람들은 더스트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해줄 ‘돔’을 만.. 2022. 10. 25.
인생의 의미가 담긴 과학소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7살 아이는 아빠에게 묻는다. “인생의 의미가 뭐예요?” 과학자인 그녀의 아버지는 이렇게 대답한다. “너는 중요하지 않아. 그러니 너 좋은 대로 살아” 하지만 그녀는 그렇게 할 수 없었다. 그녀에게는 힘이 필요했다. 아무 의미도 없는 세상에서 희망을 품고 살아갈 수 있는 힘이 필요했다. 그때, 눈에 띈 것이 어류학자인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롤모델로 삼으려 했던 조던은 악당이었다. 더 이상 혼돈을 이길 방법은 없었고, 그녀는 또다시 길을 잃었다. 그녀는 수용소에서 유년기를 보낸 애나라는 여성을 만나게 된다. 애나는 수용소에서 만난 메리와 함께 살고 있었다. 그녀는 그녀가 7살 때 아버지께 했던 그 질문을 애나에게 다시 묻는다. “어떻게 계속 살아가시는 거예요?” 아빠에게서도, 조던에게서.. 2022. 10. 24.
인공지능 세상에서 살아남는 법 <퓨처프루프> 변화는 파도와 같다. 고요한 표면이 살짝 일렁이던 것이 힘을 더하고 덩치가 커지면 어느 순간 해변을 삼키고 방파제를 넘을 수도 있게 된다. 지금이 어쩌면 그 파도를 미리 준비할 수 있는 마지막 골든타임 인지도 모른다. 기계화가 노동자들을 심각하게 위협하던 시대가 있었다. 그 위협은 자동화 시대에도 나타났고 이제는 인공지능화의 흐름 속에서 다시 한번 떠오르고 있다. 기계는 죄가 없다. 다만 효율성과 이윤의 극대화를 추구하는 인간의 선택이 있을 뿐이다. 다만 버튼 하나 똑딱이는 것 같은 그 선택에 수많은 사람들의 먹고사는 문제가 걸려 있다는 게 문제다. 그럼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 답은 결국 인간다움이다. 단순한 생산성 측면에서 이미 인간은 기계의 상대가 안된다. 인간에게 기계의 그것을 따라가라 하는 것은 .. 2022. 10. 23.
거창한 목표와 계획은 필요없다 <빠르게 실패하기> '빠르게 실패하기'라는 책을 발견했다. 코넬, 스탠포드, 하버드 같은 아이비리그 대학의 연구진들이 논문에 활용된 실험과 사례를 들고 있는데, 여기서 가장 강조하는 첫 번째 주제는 바로 '지금의 행복'에 대한 내용이다. 삶이 늘 행복할 수만은 없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스스로가 주체적으로 살고 있을 때 겪는 시련과, 환경 탓에 끌려가는 삶을 살면서 겪게 되는 고통은 전혀 다른 결과를 낳는다는 점이다. 전자의 경우, 그 순간만큼은 힘들지만 책임감을 갖고 제 발로 선택한 길이기 때문에, 그걸 견디고 이겨냈을 때, 설령 실패하고 도중에 포기를 해야 하는 상황이 와도 얻게 될 교훈의 가치는 돈 같은 유형의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반대로 후자의 경우에는 본인이 원하는 길을 가는 것조차 아닌데도.. 2022. 10. 21.
무엇을 해야할지 막막할 때 책 추천 <당신은 결국 무엇이든 해내는 사람> 책 ‘당신은 결국 무엇이든 해내는 사람’을 읽었다. 제목이 마치 내가 해낸 일을 응원하는 것만 같아 많은 에너지를 받았다. 작가 자신이 겪은 시련과 노력의 여정을 담담하게 풀어낸 에세이는 비슷한 경험을 한 친구를 만나 교감하는 듯한 느낌을 선사했다. 작가 역시 도전할 때마다 예상치 못한 부정적인 시선과 ‘잘 해낼 수 있을까’하는 불안한 마음으로 멈칫하고 흔들렸다. 그럼에도 자신의 선택을 믿고 목표를 향해 노력한 끝에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고 꿈꿔온 카페 사장이 되었다. ‘확신은 타인으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타인으로부터 나오는 건 불안 뿐입니다’ 작가의 생각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나를 향한 부정적인 시선과 예기치 않게 닥친 상황들에 끌려 다니다 보면 스스로를 돌볼 시간과 여력이 부족해지게 마련이다. .. 2022. 10. 20.
성공한 사람들의 비법을 알 수 있을까? <역설계> 성공한 사람들의 비법을 알려주는 비법서가 있을까? 이런 비법서가 존재한다면 나부터도 무슨 수를 써서라도 찾으려고 할 것이다. 하지만 이런 공통의 비법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사람은 저마다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어느 한 분야에 성공한 사람의 비법을 얻어 그 방법을 그대로 답습한다고 나도 똑같이 성공할 수 있을까? 아마 그럴 확률은 생각만큼 높지 않을 것이다. 다만, 성공한 사람들의 성공 패턴은 철저히 분석할 필요가 있다. 그 패턴을 체계적으로 분석하여 성공에 이르게 했던 비밀을 알아내고 통찰력을 얻어, 현재 상황에 맞게 수정 보안하여 나만의 패턴을 만들어 내면 되지 않을까? 이 책의 제목인 ‘역설계(reverse engineering)’란 배우고자 하는 대상을 체계적으로 분해해 탁월함의 비밀을 알아내고 중.. 2022. 10. 19.
우리 내면의 편견을 들춰내는 책 <우리에게는 비밀이 없다> 비밀을 품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때로 우리의 마음속에서는 자기 자신조차 이해할 수 없는 비합리적인 일들이 일어나곤 한다. 그런 마음을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과 법의 잣대로 논할 수 있을까. 『우리에게는 비밀이 없다』의 판옌중은 변호사로, 명확한 법의 세계에 속한 사람이다. 오래된 친구의 아들이 성폭력 사건의 가해자로 지목되어 법률상담을 해주고 돌아오던 어느 날, 아내인 우신핑이 사라진다. 판옌중이 아는 대로라면 신핑은 따로 만나는 친구도 없는 데다가 부모는 이미 사망했다. 그러나 아내의 흔적을 좇으며 하나씩 알게 되는 아내의 조각들은 그가 알고 있던 것과는 너무 다르다. 법률의 세계에 살던 그가 이제 마주해야 하는 것은 법의 언어로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이다. 거대한 무질서와 이상하게 작동하는 마음, 그.. 2022. 10. 18.
첫 직장의 아련한 추억 <믿음에 대하여> (박상영 연작소설) 박상영 작가의 연작소설 《믿음에 대하여》는 《대도시의 사랑법》《1차원이 되고 싶어》에 이은 '사랑 3부작'의 마지막 작품이다. 이전 책들을 워낙 재미있게 읽은 터라 《믿음에 대하여》는 고민 없이 집어들었다. 물론 앞의 책들을 읽지 않았더라도 아무 문제 없다. 그저 박상영 작가 특유의 감각에 빠져 충분히 즐길 수 있을 테니까. 총 네 편의 중단편은, 각 작품의 등장인물들이 서로 만나고 연결되는 연작으로 구성되어 있다. 김남준, 고찬호, 유한영, 황은채, 임철우 등은 대체로 30대인 공통점을 가진다. 첫 직장 입사 동기이거나 회사 동료, 또는 애인이자 친구라는 관계 속에서 만나고 헤어지고 서로 속을 터놓기도 한다. 나는 특히 이들의 일과 사랑에 관한 현실적인 묘사와 사건들에 크게 공감하면서 읽었다. 사회생활.. 2022. 10. 14.
무인도에 갖고 가고 싶은 책 한권 <우리는 언젠가 만난다> 제목만 보고 또 재미있다는 누군가의 말만 믿고 아주 가벼운 마음으로 책을 구입해 하루 일과를 마치고 제일 편한 자세로 읽어 나갔다. 작가는 40개의 철학적 수필을 이 책에 담았다. 순서를 지켜서 보지 않아도 시간 날 때마다 읽어 보아도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저녁 반찬거리를 사러 나갔다가 지식 가게의 사장인 그 채사장과 짧은 이야기를 나눈 것 같은 그의 은은한 미소와 유쾌한 말이 느껴진다. 한 장 한 장 넘길수록 저자 채사장이 말하는 나의 세계로 침전되어 갔다. 채사장은 너무나 쉬운 문장들로 나를 유인해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로 나를 건져 내었다. 나는 내가 해석한 세계에 갇혀 산다. 이러한 자아의 주관적 세계, 이 세계의 이름이 ‘지평地平, horizon’이다. 지평은 보통 수평선이나 지.. 2022. 10.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