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 이후의 인류에 대한 상상 <지구 끝의 온실> 『지구 끝의 온실』은 2055년부터 2070년까지 지구 전체가 먼지로 뒤덮여 인류가 삶의 터전을 잃었던 더스트 폴 이후 새롭게 재건된 시점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식물학자인 아영은 연구를 진행하던 도중, 자신이 진행하던 연구와 관련한 제보를 받고 아디스아바바의 나오미와 아마라 자매를 만나게 된다. 그들은 더스트 시대의 생존자였고, 더스트 폴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한 해독제를 만든 영웅이었지만 재건 이후 과학자들에 의해 ‘위험한 식물로 약을 만들어 배포했던 마녀’라는 오명을 쓰고 스스로를 고립시킨 사람들이다. 이들은 아영에게 더스트 폴 시대에 자신들이 겪었던 이야기를 전해준다. 더스트가 세상을 덮치자, 산업화 시대의 인클로저 운동을 연상시키듯 특권을 가진 사람들은 더스트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해줄 ‘돔’을 만.. 2022. 10. 25. 우리 내면의 편견을 들춰내는 책 <우리에게는 비밀이 없다> 비밀을 품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때로 우리의 마음속에서는 자기 자신조차 이해할 수 없는 비합리적인 일들이 일어나곤 한다. 그런 마음을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과 법의 잣대로 논할 수 있을까. 『우리에게는 비밀이 없다』의 판옌중은 변호사로, 명확한 법의 세계에 속한 사람이다. 오래된 친구의 아들이 성폭력 사건의 가해자로 지목되어 법률상담을 해주고 돌아오던 어느 날, 아내인 우신핑이 사라진다. 판옌중이 아는 대로라면 신핑은 따로 만나는 친구도 없는 데다가 부모는 이미 사망했다. 그러나 아내의 흔적을 좇으며 하나씩 알게 되는 아내의 조각들은 그가 알고 있던 것과는 너무 다르다. 법률의 세계에 살던 그가 이제 마주해야 하는 것은 법의 언어로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이다. 거대한 무질서와 이상하게 작동하는 마음, 그.. 2022. 10. 18. 최은영 두 번째 단편집 <내게 무해한 사람> 전작 에 이어 두 번째로 접하게 된 최은영 작가의 단편집이다. 에서 보여주었던 타인과의 관계, 소통의 문제, 감정 전달의 문제 등은 이번 작품집에서도 잘 보였다. 최은영 작가는 그런 주제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능력이 있다. 그의 작품들에 대해 밋밋하다고 느낄 수도 있고, 별다른 갈등 요소가 없어서 재미없다고 느낄 수도 있다. 그의 작품들은 담담함을 넘어서 무미건조하다고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소설로서, 그러한 주제들을 정면으로 돌파하는 것은 쉽지 않다. 감정에 기대게 되면 몰입을 방해하게 되고, 사건을 나열하게 되면 난잡해지기 십상이다. 그의 작품이 그렇게 무채색에 가까운 느낌인 것은 역설적이게도 본래의 색채를 더 잘 드러내기 위한 것일 수도 있다. 은 와 비슷한 느낌을 주면서도 솔직히 좀 더 답답한 .. 2022. 10. 5. 이전 1 다음